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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총알 하나 못 만들던 나라였다" 미국이 '이것' 알려주자 급성장한 K방산

riven836 2025. 7. 4. 15:53

K방산 성장의 밑바탕, 한미 군사협력

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한국의 방위산업이 오늘날 ‘K방산’으로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게 된 배경엔 군과 기업의 노력뿐 아니라, 한미 동맹이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었다. 1950년대 전후 한반도 긴장 속에서 형성된 이 군사적 네트워크는 때로는 기술료와 정치적 대가를 요구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방산 산업에 귀중한 기술 습득과 개발 기반을 제공해왔다.

K2 전차의 뿌리는 K1, 그리고 미국

대표적인 사례가 K2 전차다. 1970년대, 북한의 기갑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미국 방산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의 기술 지원 아래 K1 전차를 개발했다. 이는 당시 미국의 M1 전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델로, 국내 조립과 생산을 통해 기술을 익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과 기술력은 2008년 국산 기술로 완성된 K2 전차 개발로 이어졌고, 현재 K2는 유럽·중동 시장 등에서 수출되는 한국의 주력 기갑 무기로 자리잡았다.

K9 자주포, 기술습득에서 독자개발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된 자주포 중 하나인 K9도 한미 협력의 산물이다. 1980년대, 한국은 미국의 M109 자주포를 개량해 K-55라는 자주포를 만들기 시작했다. 포신은 미국에서 수입하고, 차체와 통제장치는 국내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축적된 기술이 결국 1998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당시 삼성테크윈)가 독자 개발한 K9으로 진화했다. K9은 현재까지 9개국 이상에 수출됐으며, 전 세계적으로 2,000문 이상이 운용되고 있다.

T-50 고등훈련기, 한미 공동개발의 상징

고등훈련기 T-50 역시 한국 방산기술 발전의 또 다른 대표 사례다. T-50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국 록히드마틴과 공동 개발한 고등 훈련기로, 미국의 F-16 전투기 기술이 일부 적용되었다. 록히드마틴은 비행제어 시스템, 항공전자 장비 등의 핵심 기술을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은 고등훈련기뿐 아니라 경공격기 FA-50까지 파생형을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T-50 계열기 수출 매출은 누적 10조원을 돌파했다.

동맹이었기에 가능한 ‘어깨너머 기술습득’

한미 방산 협력은 단순한 기술 이전을 넘어, ‘어깨너머 배움’을 가능케 했다. 미국은 전략 기술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해왔지만, 한미 동맹이라는 틀 안에서 한국 방산 업계는 현장 경험과 공동 개발, 부품 조립 등을 통해 핵심 기술을 간접적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특히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국내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협력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실질적 기술로 전환시켜 나갔다.

기술의 한계 넘은 독자 개발 능력

이제 한국은 단순 조립·면허생산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자 개발을 통해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K2 전차, K9 자주포, T-50 훈련기 외에도 천궁-II, 장보고-III급 잠수함 등 첨단 무기들이 해외 수출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체계적인 개발력과 기술 응용력이 쌓인 결과다.

앞으로의 K방산, 동맹을 넘어 파트너로

K방산이 세계 무기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지금,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동시에, 한국 무기를 공동 운용하거나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무기가 미국의 대체무기로 논의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으며, 한미 방산 협력의 양상은 ‘단방향’에서 ‘쌍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